유병로 희망대전연구원장 한밭대 건설환경대 학장

어느 모임에서 인사로 드렸던 말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공학도로서 순수하게 저의 의견일 뿐 보편적 타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말문을 열었다.
주제는 정부는 뭘 하는가? 정당이란 뭔가? 정치 환경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집권전략은 무었인가? 에 대한 논의의 서두를 여는 자리였다. 귀 동량한 지식을 동원하여 “정치란 사회의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하는 유․무형의 일련의 행위이다”라고 정의하였고, 한마디로 사회의 질병을 치료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권리를 위임받아 국가내외의 유․무형의 자원을 다스리는 일 이라고 하였다.

개인에게도 똑 같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평소에 열심히 좋은 음식과 운동을 하여 사전 예방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며, 자본주의 시대에 자유롭게 학교활동할 수 있도록 돈을 벌며, 지식을 쌓아 지혜롭게 살며, 더 나아가 사회적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결과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의 물리적 왜곡을 질병의 범위로 한정하면, 질병은 신체의 왜곡이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병명과 원인을 찾아내야 하며, 적당한 치료 기술을 통해 치유해야 한다. 그러나 질병의 종류에 따라 통증이 다르고 찾아내기 쉬운 것과 어려운 질명이 있다. 척추질환이나 오장육부의 질환은 서서히 발생되고 상당히 진행된 후에나 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는 반면 손톱 밑에 가시가 찔렸거나, 타박상이나 피부질환 등은 쉽게 알고 또 통증이 커서 곧바로 병원을 찾게 된다. 요즘 오장육부의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완치될 수 시대인 만큼 만성화하여 치료의 기회를 잃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의 질병을 찾아 치유하는 전문가를 의사라 한다. 의사의 종류는 많다. 오장육부를 다루는 의사도 있고, 말초 신경부를 다루는 의사도 있다. 가려움증이나 가시에 찔린 통증도 죽고 싶을 만큼 참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생사의 문제가 걸린 오장육부의 암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참아내고 약을 처치하면 대부분 고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니까.
우리는 이처럼 본질보다 현상에 치중할 경우가 있고 현실에선 무시 할 수 없다.

나라나 사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전문의사)은 정치권력이고 그런 전문의사의 선택은 국민이 투표로 결정한다. 개인이 병원에서 의사에게 전권을 맡기 듯, 국민은 전권을 정치권력에게 맡기고 이들은 임기 중 가용한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의 질병을 치료한다. 성질이 고약한 환자도 있고, 순응하지 않는 환자도 있으며 심지어 사사건건 헐뜯는 이웃 경쟁병원도 있다. 그러나 환자를 고치지 못하면 나쁜 병원이 된다. 환자를 달래고 경쟁병원과 차별화하여 경쟁력을 키우거나 협상을 통해 잡음을 제거하여 본래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부도덕한 방법이지만 잔소리 많은 환자는 병원비를 깍아주거나 덤으로 링겔액을 하나 더 써비스하여 입을 막는 방법도 있다. 병원에 대한 평가는 퇴원하는 환자의 권리이며, 병원의 성공여부는 환자의 평가에 달려있다. 정권의 경우에도 결과론적으로 집권정치세력이 모든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정치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고자 만들어진 집단인 정당은 각각 전문적 특성이 있다. 정치상품이다. 오장육부를 고치는 의사가 있고, 피부과 의사도 있다. 사람이 성장과정에 따라 아픈 부위가 다르듯이 사회도 진화과정에 따라 왜곡된 부위가 다를 수 있다. 또 사회의 아픈상태에 따라 이를 치료할 전문가 집단인 정당(정치세력)을 선택한다. 자유와 성장을 잘 관리하는 정당도 있고 평등과 분배를 잘 관리하는 정당도 있다. 물론 사회의 성장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자유가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간, 지역간, 계층간 격차를 발생시키고 상대적인 차이가 차별로 둔갑하고 상대적 만족감의 차이로 다수의 행복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 평등을 강조하여 분배를 강조하면 성장의욕이 둔화되고 결국 국가의 사회적 잉여는 감소하여 다른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한국의 정당은 다소 다르지만 대체로 보수정당은 국가존립의 기본요소인 국방, 치안 등 안전을 중시하며 자유와 성장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정당은 평등과 분배를 중요한 가치로 삼으로 인권과 복지정책을 통해 구현하려 한다.

사람은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면 그 다음은 배불리 먹을 것이 필요하고, 건강을 중시하며 나아가 좋은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려 한다. 또 여유가 있어 모임에 가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뒤지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창조적인 사람은 자신의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공동체의 특성에 따라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여 행복 할 수 있고, 백만장자가 되어도 불행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약 1만년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 집단사회를 형성했고 오늘날의 국가가 되었다. 국방이나 치안은 국가가 존속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고대에는 배를 채우기에 유리한 농경 집단 생활을 했고, 편리성을 추구하면서 기계문명의 산업사회로 발전하였다. 안전과 식량이 해결되었을 때 인권과 민주화를 추구했고, 문명의 확대와 더불어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복지사회를 추구하였다. 한국의 경우는 해방 후 불과 60년만에 이러한 사회변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하였다. 해방과 6.25전쟁으로 국가의 안전에 위협을 받았고, 먹고살기 어려운 보릿고개를 겪었으며, 인권을 위한 민주화시기를 거처 유무형의 인간가치를 함께 나누는 복지국가를 실현해 가고 있다. 북유럽의 선진국처럼 풍요로운 복지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국민소득 대비 복지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최근 우리사회는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세대간 갈등이다. 특히 안보에 대한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국가 역할의 가치판단 갈등이다.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년층과 청년층은 크게 다르게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정부의 역할과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고가 달라진다. 또 성장과 분배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산업고도화로 고용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고픈 시기를 거친 노년층은 지속성장을 요구하고, 청년층은 “내가 배고픈데 나라가 부자면 뭘하냐”며 분배를 요구한다. 보수당은 성장을 통해 건강한 일자리를 더 증가시킬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를 통해 개인의 분배도 증가한다고 하는 반면, 진보당은 분배를 통해 우선 국민의 갈증을 해소하고 나아가 구매력을 증가시켜 산업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 정부에서의 정치는 국민 개개인과 이들의 활동조합이 자유롭게 성장 발전하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자연적이든 인원적인든 차이에서 발생되는 격차와 왜곡을 시정하여 국민의 평등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를 만들고 정부가 이를 실천하도록 지도 감독하는 국회와 이를 떠 바치는 조직이 정당이고 이를 운영하는 주체가 정치인이 될 것이다.
결국 정치란 국민의 자유와 평등권을 조화롭게 사회각 분야에 정의롭게 펼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반국민과 정치지도자 그룹간 지식과 정보의 격차가 컷던 시절에는 소위 영웅적 권위적 리더십에 의해 국민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국민 모두가 현명한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국민속에서 함께 행보하는 수평적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과거보다 많이 성숙했지만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시대적 요구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의 틀에 갇혀 줄서기 공천경쟁에만 사로잡혀 있고, 공약실천은 뒷전으로 선거철에만 반짝 쎄일상품을 파는 얍삽한 정치꾼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심지어 선거때마다 상품명을 바꿔다는 철새 정치인도 판을 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때만 되면 정치쇄신을 외치지만 선거가 끝나면 없던일이 되고 만다. 정치 소비자인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소비자가 왕인 세상에 정치시장에는 여전히 소비자가 외면 받고 있다. 한편 반짝쎄일 상품에 귀 기울이는 유권자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정치가 바로서야 하고 정치문화가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