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일보
오피니언목회칼럼
율법과 복음6 - 율법은 죄인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박덕규 목사  |  와동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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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03  01: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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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중앙교회 박덕규 목사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매우 건장하고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나른하고 괴로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가족들은 그에게 병원 진료를 권했으나
“괜찮을거야” 하면서 거부하면서 몇 날이 지났다.
급속도로 악화된 그는 마침내 몸져눕게 되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 생을 마감했다.
그가 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 몸을 더 이상 부지할 수 없을 만큼의 문제가 그 몸에서 진화하여
마침내 그를 죽게 만든 것이다.

갈등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은 그 갈등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무한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갈등이 심화되면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생산한다.
병을 두려워하는 것은 병은 죽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너나없이 모두 스스로에게 뭔가 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죄가 무엇이며,
누구에게이며, 그리고 그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죄에서 해방되는가를 알려 하지 않는다.
곧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활동도 하고, 명상도 하고 선행도 한다.
그렇게 인류는 죄인으로써 탈구모색을 계속해왔다.

성경은
죄는 곧 죽음이라는 등식(等式)을 죄인에게 알려준다(롬6:23,창2:17,3:8-19).
죄를 청산 받는 길을 열어놓고, 그 문으로 들어와서 죽지 말고 살 뿐 아니라,
죄를 이기며 사는 공식까지 제공해준다(히10:19-20).
그 첫 단계가
곧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양심을 인간에게 공개하시면서
인간이 가지는 죄 의식은 느낌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본질적 문제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롬3:19-20).
율법 앞에 있는 자는 모두 죄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는가를 성경은 증거 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니라”(롬7:7)

죄는 법 앞에서 그 정체를 숨길 수 없다.
법을 알지 못할 때는 죄가 두려운 것임을 알지 못하지만,
일단 법 앞에 서게 되고,
그 죄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되면 죄와 죽음의 절대관계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

곧 사람은 죄로 인해 멸망을 당하지만
법이 없으면 멸망의 원인이 죄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성경의 결론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것’이라 했다(갈3:22).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蒙學)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2:23-24)

아직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인류는 아직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모두 몽학선생,
곧 어린아이를 훈도하는 율법 안에 매어 두셨으니,
인류는 세상 초등 학문아래서 운명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속량하신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대우하시기 위함이라 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
곧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로 거듭난 자들을 위함이라 하셨다(갈4:1-6).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아직 철이 나지 않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정한 때까지 청지기 아래에 두어 양육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는 아버지 집에서 자유자이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갈4:6-7).

복음주의자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율법은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이 무너지면 회개할 기회가 다시 있지 않을 터요
회개 없이는 지은 죄를 해결 받을 길이 없다.
주님은 주님 그 자신이 인류를 용서하심같이 제자에게도
‘형제가 내게 범하는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고(마18:21-22),
‘네게 와서 용서를 빌면 그리하라’ 하셨으니(눅17:3-4)
신실하게 사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 호흡하는 그 모든 순간마다 죄와 함께 하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주님께서는 이를 사해주시는 것이다(요일1:7-10).

이는 우리 몸에 생기는 병과 같다 할 것이니
육체라는 실체가 어떤 이유로든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발병하게 되고,
그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면 병이 낫는다.
병이 나았다 하더라도 언제든 우리 몸은 늘 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병이 올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 믿음이 온전하고 그 행위가 정당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여전히 어둠이요 죄와 시험이 가득하고,
우리 속에는 없어지지 않는 정욕과 탐심이 들어있음으로
혼자 골방에 앉아 있으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있는 중에라도
어느 사이 나도 모르게
우리는 잡념과 불유쾌한 생각들로
자신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더럽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율법은 두려움을 주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방어하는 경계병과 같이 우리 삶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잘못 말하거나 가르치는 그는
천국과는 상관없는 자라 했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다(마5:19-20).
우리의 믿음은 영원하고 완전하여 성령의 보증을 받고 있지만(고후1:21)
우리의 마음과 육체는 그 살얼음처럼 언약한 그릇임을 하나님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저지를 수 있는 허물을 사하시려 회개의 문을 열어 두신 것이다.
율법도, 복음도 모두 하나님의 입으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요 약속이다.
율법을 잘 지킴으로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을 빈틈없이 공경하고 사랑하는 높은 삶을 영위하게 되고,
복음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충격적인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완성하신 율법의 제도로 돌아가지는 말자는 것이다.
율법의 제도는
성막과 그 안에서의 제사와,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과 할례 등,
곧 육체의 예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구별했던 그것을
예수께서 그 몸을 희생하심으로 율법의 조문을 완성하심으로
이제는 예루살렘의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 또는 제물이나 의상,
또 몸에 행하는 할례로 다시 돌아가지 말자 함이니,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 새 언약 안에서
그의 피의 공로로 거룩하게 되었고,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장성한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아버지와 깊은 사귐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구원 얻은 것은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죄를 주께서 담당하신 것을 믿고 회개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율법의 직무는 몽학(蒙學)선생(갈3:24)이니,
곧 죄인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께로 인도한다.
이는 마치 중병에 걸려 죽게 된 자를
유능한 의사에게로 인도하여 처방을 받게 하는 것과 같으니
율법이 없으면 죄인인 줄도 모르고 망하게 되는 된다.
마치 속병이 들어있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만약 율법에 정죄되어 죽게 된 것을 안다 할지라도,
그 죄를 담당해 주실 이가 없다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율법과 은혜는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율법은 죽게 된 죄인을
살리시는 구주 예수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그리스도가 그들, 곧 인류에게 오시는 길이요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평탄케 하는 일꾼이었다.

율법에 속해 있으면 아직 죄인이지만
그 죄인이 죄를 벗고 살도록 유도하는 것이 율법의 직무다.
죄 없는 자가 없다.
스스로 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니
구세주를 요청하는 첫걸음이다.
예수께 속해 있으면 다시 죄인이 되지 않는다.
혹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자녀의 권세를 인정하고 아버지께 구하면 즉시 사하여 주신다.

우리는 율법에 눌려 자포자기하여
자신을 죽이는데 내놓지 말아야 하고,
복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살려고 해야 한다.
율법도 살리는 법이지만 소극적이요
복음도 살리는 법이요, 적극적인 생명의 은혜요 진리이다.
율법을 주신 것은 죄인을
복음 앞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긍휼이시다.

내 영혼아, 은혜와 진리에 순종하여 자유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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