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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목회칼럼
율법과 복음5 - 주종의 관계, 부자의 관계
박덕규 목사  |  와동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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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6  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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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중앙교회 박덕규 목사
※성경이 말하는 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과 복이 충만한 영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성경이 담고 있는 그 본질은, 실상 율법과 복음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치 중요한 과목이다. 이것을 이렇게 여러 모로 구분하여 설명해야 하는 것은, 누구든지 이 두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유일하신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그의 의도를 깨달아 함께 그 영광을 누리게 되기를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엽서 한 장 분량이면 그 본질을 도출해 낼 수 있겠지만, 혹은 강조되고 혹은 중복되는 증거들을 구분해서 읽으면서 성경을 이해하고, 이해한 그것들을 몸에 담게 되는 것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 이란 말과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필자는 그토록 해결되지 않는 갈등과 아픔 속에 있을 때, 회개하고 성령을 모셨으나 성경에 대한 기초이해가 전혀 없음으로써 매우 답답한 세월을 살아가던 중,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깨달았을 때, 나는 갑자기 할 말이 많아졌고, 그 뱃속 깊이 흘러가는 생수의 강을 제한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함께 그 생수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고 의지함이다.
만약 들은 것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찾다가 자기 마음을 하나님으로 오해했고
다른 이는 세상 신들에게 지배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앙망하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을 이루어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그분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요
그분과의 관계를 생명처럼 지키고 감사하고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이나 잡다한 교리는 사람 속에 자리 잡은 종교성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경건한 맹종은 있지만, 신앙의 결과는 단지 가기위로에 그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까닭이 있다.
그분의 약속이나 명령이 나와 갈등이 있다하더라도
그것과 나 자신의 수준이 현저하게 차이 있음을 알고
더 좋고 행복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기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이 싫고 괴롭지만
‘위에서 부르시는 상을 위해 달려간다’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고
‘내 말과 내 전도함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라’ 했다.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갖게 되는데,
하나님의 계시를 내가 직접 받은 사실이 없어도 기록된 성경을 통해 얻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살아있다.
우리가 지금 구원받게 된 믿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 우리에게 믿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시고, 그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경에서 보고 믿는다(롬4:16-25).
그래서 약속이 살아 있으니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우리의 신앙은 그 약속에 권위를 두고 전적으로 그 약속을 믿으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마22:32).
우리는 우리 신앙의 조상들과 동일한 믿음으로 살게 되었다.
이는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을
내가 쓰다가 내 자손에게 동일하게 상속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이 애지중지 사용하시는 사람은 자기 신념에 불붙어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믿음으로 받고 그것을 생명으로 알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신념은 하나님과 상관하지 않는 자신의 믿음이다(사47:10).
하나님이 있든지 말든지 그는 자기의 믿음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신앙의 사람이다(눅5:5).
신앙은 내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보고 들은 하나님의 확신을 믿는 것이다(롬10:9-17).
하나님은 믿음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에게 형상화되었으니
곧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요14:9-12).

구약은 주종관계를 다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낳으신 일이 없으니
천하 모든 민족 중에서 그들을 종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신약은 부자 관계를 갖는다.
부자의 관계는 선택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피를 흘리며 낳아야만 한다.
아들은 출산과 출생의 과정을 통해 그 관계가 성립된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
곧 피 뿌려진 옷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로(계19:13)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류를 낳으셨다(약1:18, 엡1:3-14).
누구든지 그의 은혜와 공로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구원받는다(엡2:8-10).
이들은 택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이것이 곧 부자의 관계를 이룸이다.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시기 전에는
전체 인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었다(롬5:8, 10).
그들 중에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으니
백성은 하나님이 낳으신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많은 사람 중에서 택하신 종들이므로
택하심 그것이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이요 복이 되었다(롬11:28)
그들은 종의 영을 받았으므로(롬8:15)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이탈한다면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히8:9).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스라엘 광야 1세대가 이와 같다(민14:26-35).

백성은 자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그 주인 앞에 두려움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고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옛 죄에서 사함 받았음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다.
이는 창세전부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경륜이었으니(벧전1:18-20)
백성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시는 산모(産母)로 사용하신 것이다(출15:17).

종이 훌륭하여 주인에게 칭찬받을 수는 있지만 주인의 기업을 물려받지는 못한다.
종이 자기의 주인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주인도 종을 후사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은 비록 칭찬받지 못할지라도 기업을 이을 후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낳으셨는가?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셨으니
이를 해산의 수고라 했다.
해산의 수고 없이 이루어지는 주종의 관계는 말로써 이루지만,
주종의 관계는 신분관계가 아니라 직분을 선택한 것이다(롬9:19-22).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산하는 아픔을 경험하신다.
그래서 아들의 권한은 그만큼 큰 것이다.
머슴과 장자가 함께 들에 나가 일을 하지만
머슴은 항상 그 장자의 눈치를 살피며 일하고
장자는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다가 장자가 실수하면 자기 기업에 손해가 온 것이지만
종이 실수하면 그 집에서 쫓겨난다.
주인은 종을 부리고 또 종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본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5-36)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이요(롬6:1-11)
그가 죽으심은 우리의 옛 죄와 그로 인한 저주와 심판이 끝난 것이요
그의 부활과 함께 영생을 힘입게 된 그 거듭남의 첫 열매이다.
성령은 이를 보증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가(롬8:31-35).
아들의 실수로 잠시 아버지의 마음에 아픔이 있을 수 있고
또 아들이 잠시 아버지의 곁을 떠날 수 있으나
그 신분관계만은 영원하고 영원한 것이니
아버지와 자식은 영원히 인연을 끊을 수 없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아부하는 것은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한 외식이 되겠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양육 받는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하나님 앞에 잘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들이었고(마23:)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아버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다하시는 것이다(빌2:8).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혈통을 택하신 것이다(출6:2-7).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 나고
종 된 신분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주인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이방인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다(롬11:30)
그러나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신 이후에는 전 세계의 인류를 동일하게 대우하셨으니
속죄와 구원을 모든 인류에게 주셨다(롬11:31-32).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고전1:18-25, 갈3:28).
예수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혈통과 상관없이 은혜의 믿음을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바,
예수 이름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허락하셨으니(요1:12)
이를 두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하는 것이다(요3:5).

자녀는 아버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자녀에게 쏠려있다.

‘성령이 너희 속에 영원토록 함께하시리라.’(요14:16)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0:20)’
예수께서 병을 고치실 때
‘병 고치는 능력이 예수와 함께하더라.’(눅5:17) 하심같이
우리는 모세의 손에 잡힌 지팡이처럼,
우리에게서 아버지의 성품과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주님도 아버지의 일을 하실 때는 ‘거룩한 종’(행4:30)이라 하셨으니
신분상으로는 부자의 관계이지만,
사역적으로는 종처럼 일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 아니요 하나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이 아들의 일이 되고, 아들의 일은 아버지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성품과 능력과 이적들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자기의 살을 찢어서 제자들에게 나줘 주시고 그들 안에 들어가셨다.
그 주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안에 계신다.
그를 믿고 사모하고 의지하는 자는 산 자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녀들의 아버지이시다.

신앙과 신념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때, 신앙의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신념을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지시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있어야 하고,
들었으면 믿어야 하고, 믿는 바를 순종하는 겸손한 태도다.
실상, 신념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믿음을 하나님께 믿어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내가 이렇게 믿고 있으니 하나님도 그대로 따라 주세요.’라는 뜻이 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배웠고 믿는다(요5:39).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뵙는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뵙게 되면 아버지를 뵙는 것이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뵙게 된다면 두렵고 신판의 주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의 영, 곧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고로
하나님 아버지의 후사가 됐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된다.
그래서 주님 고난 받으신 이 땅에서
아버지의 일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으니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이는 장차 받을 영광에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롬8:18).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마23: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곧 상속자다.
영원한 관계,
그 변하지 않는 부자의 관계는 하나님의 아들의 공로로써 얻게 됐다.

나는
율법하의 종이 아니요
복음하의 자녀다.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권세가 함께 주어진다.
권세는 세상을 이기는 강력한 권리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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