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기간의 큰 화두 중 하나였던 「경제민주화」는 이를 기획한 김종인 전 의원을 당시 박근혜 진영에서 선점함으로써 민주당에 큰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만큼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다른 어떤 공약보다도 무게가 큰 공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김종인 전 의원은 대선 이후 철저히 소외됨으로써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의문을 품게 된 건 주지의 사실인 듯하다. 김종인 전 의원 역시 최근 불편한 심기를 여러 번 드러내곤 했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창조경제」만큼이나 그 용어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추상성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구조는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의 주체는 수요와 공급의 주체인 시민과 자본이다. 외형상 경제와 민주라는 용어는 시장 안에 용해되어 실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면 대자본의 횡포와 소자본이나 소비자의 억압과 착취구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붉어졌던 갑을(甲乙)관계 등에 의한 밀어내기와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등 대기업에 의한 부(富)의 편중이라는 자본의 쏠림현상이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이론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근거를 우리의 헌법 제 119조 2항에서 찾고 있다. 즉,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국가가 개입하여 부의 쏠림현상을 제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는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런 요구를 무시하고는 결코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라는 것은 우선순위가 있고 선결과제가 있다. 경제민주화를 무리 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제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과 이들을 움직이는 재벌그룹의 절대적인 참여와 협조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이나 정의당 등은 법률적으로 쉽게 제어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만만할 것 같으면 지난 10년의 진보정권 시절에 왜 손을 보지 못하였겠는가? 우리나라처럼 해외로 막대한 자본을 도피시키고 현금을 숨겨 놓은 나라도 없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본가의 부도덕성이고, 둘째는 정치의 불안정성이다. 정치의 불안정성은 전쟁 등 북한의 도발 위험과 국내 정치권의 동요에 따른 세금폭탄이나 비자금 색출 등의 위험요인에 대한 경계심이다.

경제민주화는 위의 두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이 우선 조성되어야 한다. 즉, 자본가의 도덕성이 재고되어야 함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부자를 소위 적대시하고 이들에 대한 징벌적인 법제화로 인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징벌적 강행규정은 자본의 저항과 유출이라는 가뜩이나 심각한 부의 도피를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로드맵을 유추해 보면 제 1단계가 지하경제의 색출과 양성화, 부패와 부조리의 척결이고, 제 2단계는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회복시킴으로써 실물경제 혹은 체감경기를 뿌리내리고, 제 3단계가 공기업의 개혁과 구조 조정이며, 제 4단계가 경제민주화로 읽힌다. 만일 필자의 이런 유추가 맞는다면 이를 적극 지지한다. 그 이유는 지난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성공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김종필 전 총리가 모처럼 등장하여 한 말이 있다. 맹자의 말씀 중 양혜왕 편에 나오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이다. 국민적 존경의 대상인 김능환 전 대법관도 같은 말을 했었다. 즉,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바른 마음 또한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산업화는 절대요소라는 것이다. 일정한 소득이 유지되지 않으면 민주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건 배고픔과 굶주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현실경제가 침체되어 죽을 쑤는 형국에서 단지 국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경제민주화 카드만 내밀었다가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책임이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 정부의 실정을 바라마지 않는 세력들이라면 당연히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밀어붙일 것이지만 말이다. 공기업은 적자투성이 임에도 귀족 대접을 해주면서 사기업들에게 칼을 들이댄다면 과연 이들의 도피자금에 대고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야권은 제 2단계에서 발목을 잡아버렸다. 이를테면, 부동산 경기는 체감경기에 직결이 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사가 활발해 져야 이삿짐센터는 물론이고 리모델링과 도배, 장판 등 소상공인들이 살아날 수 있다. 하다못해 중국집과 치킨집도 돈이 돌게 된다. 그런데 부동산 활성화 법이 마치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처럼 주장하는 야권의 인식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적 계산밖에는 없는 듯 보인다.

제 3단계에서는 아주 정권을 무너뜨릴 요량으로 보인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하나가 세상의 인심을 먹물로 가려 버린 느낌임을 지울 수 없다. 치기 어린 대학생의 잘못된 상식 하나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학생은 용기가 있다면 사실관계를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한 후에 사과 글이라도 게시를 해야 할 듯싶다. 공기업은 분명히 혁신 수준의 개혁이 절실하다. 단순히 부채 금액이나 비율을 떠나 생산성이 너무 저조하고 상대적으로 누리는 혜택은 과도하다. 그게 바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제발 유행만 따라 반응할 게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숙고와 미래를 고민한 후에 대자보를 붙이고 주장을 했으면 좋겠다.

한수원의 그 추악한 부패의 고리를 본 지 얼마나 지났는가? 현재도 진행형인 그 원전마피아를. 철도공사는 역사로 쳐도 한수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서 깊은 철도고등학교, 철도대학이 있을 정도로 학맥으로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래서 개혁의 칼날이 잘 먹히지 않는 철옹성이지만, 따라서 반드시 개혁이 필요한 곳이다. 작금의 철도공사 파업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철도고의 인맥들로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기득권의 폐해가 온 누리에 미치고 있는 중이고, 적당히 타협하면 여타의 공기업 개혁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철도공사의 개혁은 지상과제라는 이유가 된다. 철도공사의 개혁에 실패하면 경제민주화는 입에 담아서도 안 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