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일보
오피니언칼럼
휴가의 미학, 속도의 문명에 대한 성찰
국립한국교통대학교 한숭동 석좌교수  |  前 대덕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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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3  00: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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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숭동 前 대덕대학교 총장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다. 휴대폰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각종 자기개발서는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치열하게 살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느리게, 천천히, 여유있게 사는 법을 잃어버렸다. 가파른 삶의 속도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은 눈 밖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서는 온갖 부작용이 생겨났다.

‘바쁨’은 어느덧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바쁨’은 일종의 권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여가를 즐길 시간조차 없는 자, 즉 바쁜 자이다.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빠름빠름의 이데올로기 속에 바쁘다는 것은 곧 성공이고 긍정(肯定)이었으며, 느림은 실패고 부정(否定)이었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스펙’과 '몸값'을 높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모두가 어학 공부에, 각종 시험대비 학원으로, 독서실로 향하느라 바쁘다.

이 속도의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온 사람들은 패배감에 시달려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만 뒤처져도 열등감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살률 또한 거기에 정비례 하고 있다.

몇해전 느림이 실종된 도심의 삶을 배후에 두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광고문구가 큰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한국은 산업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자살률도 가장 높은 나라이지만, 연평균 휴가기간은 가장 짧다.

19세기 세계적인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던 길 멈추고 자신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면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 가장 절실하게 배워야 할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멈춤의 기술' 이다.

   
 
가끔 떠나라. 떠나서 잠시 쉬어라.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며 속도전으로 치닫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추구한다. 빠른 디지털 사회에서 느린 콘텐츠, 수단은 빠른 것을 원하고 내용은 아날로그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아찔한 문명과 세태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제 사람들은 ‘느림’이나 ‘비움’에서 나오는 ‘평온’을 찾고 있다. 실적과 성장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던 우리 사회가 조금씩 ‘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창의적이고 지속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끔 떠나라. 떠나서 잠시 쉬어라. 그래야 다시 돌아와서 일할 때 더 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다보면 판단력을 잃게 되리니. 조금 멀리 떠나라. 그러면 하는 일이 좀 작게 보이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어디가 조화나 균형이 부족한지 더욱 자세하게 보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쓴 ‘균형’이라는 詩라고 한다. 이미 오래전 다빈치는, 열심히 일만 해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업적에서 보여줬다.

세계적 부호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휴가 때가 되면 모든 연락을 끊고,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칩거에 들어간다. ‘생각할 공간’을 확보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것이 그 만의 독특한 휴가 프로그램인 ‘생각주간(The think week)’이다.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미 서북부에 있는 호숫가 근처 작은 별장에서 10년 뒤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기 위한 휴가를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전 세계 MS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생각주간’에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112개까지 읽은 적이 있다고 한다.

   
 
휴가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여유를 가져다 준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 시즌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처럼, 휴가는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올바른 휴가란 어떻게 쉬어야 하는 것일까? 일을 더 잘하거나 집중력을 높이고 싶을수록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세상의 빠른 속도를 벗어나 조금 느리게 여유있는 쉼을 가져야 한다.

독서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책을 읽는 휴가는 몸과 마음을 모두 쉬게 하는 건강한 방법이다. 특히 인문학 관련 책들은 읽다 보면 이열치열의 원리가 통한다. 정쟁과 갈등, 공방 이야기로 여름보다 더 뜨거운 세태를 보는 차분하고 시원한 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휴대 전화 조차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다.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주는 사색과 명상, 산책속에서 우리 몸의 방전된 에너지가 천천히 채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돌아보노라면, 자연스럽게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사회가 가진 갖가지 갈등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

휴가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여유를 가져다준다. 이게 바로 진정한 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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