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부 이사장

 ‘바른협동조합 실천운동본부’ 창립총회로 정신이 없던 지난 15일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 신문사 기자였다. 그는 대뜸 신동규 농협금융지주회장이 오늘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금융지주 회장들이 줄줄이 물러나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사임압력을 받았거나 아니면 알아서 사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내 답변이 신통찮았던지 곧 끊었다. 창립총회를 마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십여 건의 많은 기사들이 올라와 있었다. 궁금해서 읽어보니 신 회장이 언론에 털어 놓은 사임의 변 때문이었다.

“예산·인사까지 사사건건 개입”

신 회장은 2012년 6월 취임 이후 지난 11개월 동안 최원병 중앙회장의 지나친 경영 간섭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동안 쌓인 최 회장과의 갈등을 언론에 토로했다. 중앙회와 지주회사가 분리돼 있지만 형식적이고 중앙회는 경영전략 수립, 예산, 조직 등은 물론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대표나 임직원 인사에도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했다. 심지어 홍보비 예산까지 중앙회가 틀어쥐고 있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전문경영인으로서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신 회장은 또 “취임하고 보니 명칭사용료라는 희한한 게 있더라”며 영업수익 또는 매출액의 2.5% 이내에서 중앙회에 내기로 되어있는 명칭사용료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3~4월에 발생한 전산마비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압력을 받아왔다며 농협전산망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중앙회가 져야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겼다며 억울함도 나타냈다. 그리고 신 회장의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를 중앙회 이사회내의 소위원회가 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금융지주회사법 위에 있는 농협법 체제하에서는 제갈공명이 회장으로 와도 별수 없을 것이라며 농협법 개정을 정부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대체로 신 회장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중앙회장의 경영간섭을 비판하며 농협법 개정에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언론 보도를 읽으면서 나는 기사를 쓴 기자나 지주회사 회장을 지낸 분이 2012년 3월에 이뤄진 농협중앙회 신경분리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명칭사용료가 왜 생겨났는지, 기본적으로 농협과 신경분리에 대한 공부가 안돼 있다고 생각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농협법은 알아야 하고, 자신이 달성해야 할 경영목표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고 도리가 아닌가 싶다. 중앙회가 산지유통 활성화 등 회원과 조합원에 대한 지원 및 지도 사업의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위해 생겨난 명칭사용료를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자신의 경영실적 부진의 책임을 명칭사용료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명칭사용료 만큼은 성실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매출을 늘리고 영업수익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정이라도 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농협금융지주회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신경분리 목적’ 망각한 처사

그런데 문제는 신 회장의 말대로 중앙회 지주회사 경영간섭이다. 경영전략의 수립에서 예산, 조직, 인사에 이르기까지 중앙회가 지주회사 경영에 개입해온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는 중앙회가 왜 신경분리를 했는지를 망각한 매우 잘못된 처사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개방으로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농협중앙회 금융업이 다른 금융회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농협금융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금융업 일체를 지주회사 형태로 분리·독립시켰다. 그리고 중앙회는 회원조합에 대한 봉사 등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중앙회는 지주회사 회장을 금융전문가이면서 농협이란 조직의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뽑아 그에게 경영권 일체를 넘겨주고 책임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당초 신경분리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래도 정 불안하다면 네덜란드 그리너리 협동조합처럼 지주회사가 중앙회와 회원조합의 이익에 충실하게 운영되도록 경영전략 등을 감독하는 감독위원회를 지주회사 이사회의 상위조직으로 별도로 설치하고 중앙회 이사 가운데 금융에 밝은 일부 이사들이 이를 겸직하게 하여 지주회사를 감독하면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지주회사 회장의 인사, 예산 등 경영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중앙회가 지주회사경영의 기본 원칙은 무시하고 경영성과 등의 책임은 지주회사 회장에게 떠넘긴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전산사고 문제도 그렇다. 만약 중앙회가 지주회사의 인사와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지주회사에 대한 지도와 감독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중대한 착각이다.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회와 자회사인 지주회사와 손자회사와의 합리적 관계에 관한 경영원칙의 문제이고 운영의 문제이다.

잘못된 조직·관행 바로잡아야

그런데 이 문제 뒤에는 조합원 출신으로 비상임 단임이며 금융업 등을 잘 모르는 중앙회장을 보좌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농협중앙회를 사실상 장악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회원조합을 지배하고 통제해온 중앙회 임직원들의 반 협동조합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나쁜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중앙회 사업 분리에도 불구하고 지주회사 등 자회사 경영전략, 진단평가, 조직관리 등의 업무수행을 위해 오히려 더욱 확대된 중앙회장 산하 교육지원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농협의 권부인 경영기획국이 해체되거나 축소 개편되지 않는 한 중앙회의 부당한 지주회사 경영간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차제에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단행해 잘못된 조직과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농협중앙회의 미래는 없다. 이번 신동규 회장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농협중앙회의 조직과 경영혁신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고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회는 부당한 경영간섭이 아니라 드러난 경영실적으로 지주회사 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신경분리를 했는지 중앙회에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중앙회의 부당한 지주회사 경영간섭은 즉각 시정돼야 한다.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 2013년5월27일자 (제25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