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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노인과 가정과 사회
박덕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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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4  01: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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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가족의 지극한 사랑과 기대를 안고 태어난 핏덩어리가 무엇을 알까 하지만, 그가 모친의 태를 떠나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 매우 큰 충격과 두려움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 시작된 그 인생길은 그가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쉴 수 없는 고달픈 인생을 살아간다. 그 인생에서 무엇을 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소년의 때를 지나고 청년, 장년을 세월을 말로 다할 수 없는 괴로움 속에 달려왔다. 어언 눈도 귀도 어두워지고 입도 어눌해지면서 정수리에는 서리가 앉는다.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다하는 바른 삶을 영위했지만 그 몸과 정신이 쇠퇴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가정에서부터 그 지위가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자연 사회에서도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잠시 후에는 귀찮은 존재가 된다. 길고 긴 세월을 견디어 온 것 같지만 실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젊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노인이 된 것이다.

마음으로는 청년의 때에 머물러 있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지만 어느 사이 자기 몸 하나 지탱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을 깨닫게 된다. 거기다가 불치의 병까지 들면 천덕꾸러기 인생으로 한숨 속에 여생을 견뎌야 한다. 효성스럽다는 자식들의 효도관광을 따라 나왔다가 늙은 고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소설 속의 얘기가 아니다.

그 자식 위해 일생 희생한 대가로 잘 사는 자식 자랑에 침이 마르지만, 그것은 자신의 불행을 은폐하려는 노인의 넋두리일 뿐이고, 실상은 용돈 타 쓰기가 어렵고, 며느리 손에서 밥 얻어먹기가 미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늙은이와 별로 다르지 않은 그런 노인이지 않은가. 이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늙은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토록 기대했고 이를 위해 일생을 희생했던 자식들을 떠나 사회가 만들어놓은 그 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노인의 마음은 저리고 시리다. 게다가 사람 노릇도 아니고, 사람대접이라 할 수도 없는 그러한 삶을 100세까지 연장하는 것이 복인가, 재앙이겠는가. 그리고 그를 부양해야 하는 사회의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이어야 하는가. 그 늙은이를 그렇게라도 마지못해 구출해 주는 그 사회가 바로 그들,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 아니겠는가.

세상이 악하다느니 말세라느니 하지만 실상 악한 것은 우리 늙은이 자신이고, 또 그 늙은이들이 잘못 양육한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는 것은 바로 누워서 침 뱉는 그것일 뿐이다. 늙기 전에 서둘러야 하고, 아이들이 불효자가 되기 전에 바르게 자녀교육 했어야만 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하고 성경은 가르친다. 아비의 권위로써 주의 교양과 훈계를 자식에서 상속했더라면 그 가정이나 그들이 이루고 사는 사회나 할 것 없이 질서가 매우 정연하고 복된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주의 교훈은 세상에 나도는 어떤 종교교리나 철학정신이나 무슨 개화운동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진리다. 주의 교훈은,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고, 그가 주의 공로를 의지하고 성령을 모시고 그의 인도를 받으며 그의 뜻대로 살게 된다.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과 배신과 물고 물리는 갈등은, 그 배신자들이 모여 어떤 운동을 전개하거나 무슨 결심을 한다 해서 개선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방법이 아니다. 사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욕심과 오만과 탈선은 사람이 만든 어떤 제도나 법으로 조절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소한 그날 또 다시 성폭행하지 않던가. 감옥에서 그가 궁리한 것은 어떻게 잡히지 않을까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젊어서부터 하나님의 공의가 무섭다는 것을 어린 자녀들에게 본으로 보여준다면, 그 자녀들은 사회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수평문화에 길들여지지 않고, 인간본연의 질 높은 인생을 구가하는 참된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젊었을 때부터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 복 받은 자손을 얻는 것이요,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는 길이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20:29) 했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 했고,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17:6) 했다.

거룩한 조상이 되어 자손들에게 신앙의 스승이 되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니, 자신의 노후 대책은 신앙 있는 자녀들의 몫이어야 참으로 행복한 노인이 된 것이요, 그는 종신할 때까지 가정에서 소외되지 않게 될 것이요. 그 가정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모범이 될 것이요,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안정되고 소망이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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