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일보
오피니언목회칼럼
율법과 복음1 - 정죄와 용서
박덕규 목사  |  와동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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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1  13: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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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중앙교회 박덕규 목사
하나님은 생명이시니
그의 모든 계명은 그 계명을 받고 지키는 자를 영생하도록 주시는 양식이다.
육체가 땅에서 나는 양식을 먹어야 살듯이,
영적존재 아담은 영혼을 살리는 영생의 양식이 있어야 한다.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신 계명,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심도 그를 영생케 하기 위한 생명의 계명이었으니
몸 밖에서 유혹이 오거나 몸 안에서 욕구가 일어날지라도
그 실과를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므로
그 결과 영생하게 될 것이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죄인이 되었고,
그 결과로 그 영의 죽음을 자초했다(롬6:23).
그 본질인 영혼이 기능을 잃었으므로 그 현상이 삶과 육체에 엉겅퀴처럼 돋아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최초로 언약을 세우셨으니(창22:17-18)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일가족이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이루기까지
400년 세월을 그곳에서 양육 받았고(창15:13-14),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시내산을 지나 예루살렘, 곧 시온까지 인도하셨다.

애굽에서는 바로의 종이었던 히브리인들은(창14:13)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 부르게 되었고(창32:28),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율법을 주셔서 세상 사람과 구별하셨으니,
그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절대적 보호와 인도 속에 살게 될 것이지만,
만약 율법을 어긴다면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에덴에서 단 하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첫 아담의 후예들인 백성에게 주신 법, 곧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은 크게 둘로 구분했다.
먼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니 생명과 관련된 명령이고,
다음은 사람과 관련된 계명이니 윤리적이다.
하나님께 악을 행하면 죄인이 되고 사람에게 범죄 하면 악인이 된다.
이를 통틀어 죄악이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범죄 하면 하나님이 처벌하시고
사람에게 악을 행하면 행한 대로 갚아야 한다.

그런데 율법을 세분하면 수백 가지가 되는데,
잘 지키다가도 그중 하나만 범해도 율법 전체를 범한 죄인이 되고 만다.
사람이 죽는 것은 백체가 다 병들어 죽는 것 아니고
심장만 나빠도 죽는 것과 일반이다.
더구나 아직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정욕적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령한 법을 다 지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들 뿐 아니라 온 인류는 이미 하나의 계명,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죄를 지고 나고, 죄인으로 살고 있다.
죄인은 죄 짓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의를 행하는 것이 낯설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 계명을 지켜서 의로워지기를 기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범할 때 처벌하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과
죄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애굽과 바로가 당하는 심판을 이스라엘이 목도함으로써
그들의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좋으신 하나님이시지만 매우 두려우신 분임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에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면서 여러 가지 죄를 범하게 될 때마다
하나님은 가차 없이 처벌하심으로 율법의 권위를 지키셨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죄인임을 알게 되고 이스라엘 전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오는 길로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을 주셔서 죄를 용서하시는 긍휼을 알려주신다.
율법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었지만,
성막의 제사를 통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 것이다.

율법은 죄를 보게 하는 거울이니 율법은 정죄의 직분을 가진다.
그리고 율법 하에서는 의인이 없으니 하나도 없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혹 선행을 한다 해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음은 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형수가 살 길은 용서받는 길 밖에 없다. 사면만이 그를 살릴 수 있다.
곧 율법의 의보다 큰 다른 의가 있어야만 죄인이 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0-22).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
이름을 주셨으니 곧 예수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 백성의 죄를 사하시는 이의 이름이요(마1:21)
그 이름을 번역하면 임마누엘, 곧 영원히 함께 계신 이름이다(마1:23).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계명, 곧 그리스도라는 직임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니,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세주라는 뜻이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의 피로 죄인을 구속하셨다.
곧 용서하신 것이니 곧 복음이다.
복음이란 죄에서 용서받았으니 자유 하라는 소식이다.
더 이상 정죄 받지 말고 해방된 것을 믿으라는 말이다(요20:31).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니 죄인을 용서하는 직분을 가진다(롬1:17).
율법 하에서는 의인이 없고 죄인뿐이지만
복음 하에서는 죄인이 없으니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이 아니라 은혜다.
은혜란 대가없이 거저 베푸시는 선물을 말한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죄에서 용서받은 것이다(엡1:7).
죄의 결과는 죽음이니, 죄인은 이미 죽은 것이다(엡2:1-3).
죽은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은 용서받는 것 밖에 없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하자.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하다.
율법을 잘 지켜 죄를 짓지 않음으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하다 할지라도
이미 지은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또 이미 신분상의 죄인이 율법 지킨다고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살았지만 아직 그는 죄인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생 고행하듯 율법을 준수했을지라도
죄의 나무에서는 죄의 열매만 거두게 된다(마12:33_.

그러므로 율법하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만 살 수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1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율법의 깊이는 의로워지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죄를 깨달으면 죽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절망할 때
메시아가 나타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이야기가
율법과 복음의 1차적 관계, 곧 정죄와 용서의 관계다.

율법에 용서를 더하면 복음이 되고
복음에서 용서를 빼면 율법이 된다.

율법도 복음도 생명이신 하나님의 법이므로
둘 다 생명운동을 위해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
중한 병자가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니
율법은 진단하는 법이요,
복음은 처방하는 은혜다.
율법이 하나님의 부성이라면 복음은 하나님의 모성과 같다.
법으로는 처벌을 면할 수 없으나 은혜로는 용서받고 구원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먼저 왔고,
그 법에 매어 죽게 되었음으로 알게 될 때 복음이 선포되었으니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비유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결코 정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음이라”(롬8:1-2)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내 영혼아, 다시 정죄 받지 말고 자유를 누리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5-57)

처신이 거칠고 성질이 고약해도
그가 보혈 앞에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했다면 그는 용서를 받은 것이요
처신이 정갈하고 매우 지성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도
예수를 모르면 은혜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와 사망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아 자유자가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로써
그 은혜 망각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섬기며 살 것이다(히10:26-27).
주님의 희생을 통하여 받은 구원을 끝날까지 지키며 경성하며 살 것이다(벧전1:13-17).
아직 이 은혜에 들어오지 못한 이웃, 친지들에게
이 큰 자유를 알려서 함께 생명을 누리자(막16: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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