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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기독 언론, 무엇을 말할 것인가
박덕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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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2  16: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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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말하는 존재다. 또한 말을 듣는다. 그 언어의 교류를 통해 인류사회는 매우 긴밀하게, 그리고 간단하지 않은 역사를 기획하고 협력하여 작품을 만든다. ‘만약 언어가 없었더라면’ 하고 가당찮은 상상을 해 본다면, 인류가 언어를 기능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인류는 말과 함께 글을 가짐으로써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기록은 말의 가치를 거의 영구하게 보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언어와 기록을 가지며, 자신을 위한 사회적, 또는 집합적 기구를 구성하고 그 기구의 이상과 주장을 말과 기록으로 나타낸다. 이렇게 생산되는 언어나 기록이 모두 옳거나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큰 복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말로써 죽을 자 살리기도 하지만 말로써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기도 한다.

기독교는 말의 공동체다. 그 기독교가 가지는 말의 근원은 성경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서도 성경에는 인간의 비뚤어진 속성, 탐욕과 거짓,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간본성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매우 추하고 거북스러운 언어들이 수두룩한데, 성경에 이런 언어들이 기록된 것은 ‘인간을 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관점’을 말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가꾸지 않은 땅에 뿌리지 않은 잡초가 무성하듯, 인간의 내면에서 움돋고 있는 생각이나 지식이나 소원은 하나님과 충돌하고 또 반대한다. 또한 사람의 지식이나 주장은 대체로 그 근원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말하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성경은 그 상황을 있게 한 근원을 말함으로써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 초월적인 지식과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써 기독언론은 마땅히 이 둘, 사람의 말과 하나님 말씀 사이의 간격을 조화시키는 중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이 인간의 말만 되풀이한다면 그걸 굳이 기독언론이라 말 할 수 없을 터요, 하나님만을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듣고 소화시킬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기독언론의 존재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당한 중재자가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적나라하게 증거 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된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진리와 생명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요, 복이요 전능자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WCC, 곧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메시지와 성명서를 주목해 보고, 이로써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WCC는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44개국, 147개의 교회 지도자 351명이 참석한 제1차 총회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교파간의 담을 허물고 교회들의 연합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으나, 점차 교회연합을 넘어 종교 간의 담을 헐고 서로 간에 대화를 추구함으로써 종교다원주의와 에큐메니칼 신학을 추구하게 됐다.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린 제2차 총회에서 벌써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고 고백했으니 교회모임에서 세상모임으로 확대된 것이다.

제3차 총회에서부터 ‘다른 종교 안에도 그리스도가 관념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니 우주적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보자시며 사람들이 자유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들에게 임하시는 바, 우주적 그리스도는 불교, 힌두교, 이스람교에도 임재하시지만 다만 그들이 알지 못해서 다른 것을 구주로 믿고 있다고 표명했다. 제4차 회의에서는 ‘세상의 모든 종교의 어둠 속에서 주무시는 그리스도를 깨우기 위하여’라는 모임의 목적을 발표했고, 이때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용어를 신자들’로 바꾸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동료 신자들’로 부르기로 했다.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총회에는 ‘현존하는 (다른) 신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인해 이슬람교, 가톨릭, 불교, 힌두교, 유대교, 무신론 자 등 이방종교의 대표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뤘다. 제6차는 198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고, 301개 회원교회에서 847명이 참석했다. 개회식 때 캐나다 원주민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그들의 우상인 토템기둥을 총회 장소에 세웠고, 그들 종교주문을 암송하며 춤추고 노래하였고, 무신론자에게 총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게 하고, 의장인 뮬더는 ‘불교, 힌두교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어도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제7차 총회에는 4,00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의 세계 15개 종교 대표자들이 포함되었고, 주제 강의를 맡았던 한국의 정현경 교수는 하얀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초혼제를 벌이기도 했다. 제8차 총회에서는 한국의 정현경 교수가 ‘그리스도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요14:6)라 질문하고, ‘예수님이 실수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제9차 WCC 총회에는 4천여 단체와 348개의 회원 교파가 참여하였다.> 최덕성, 전 고신대 교려신학대학원 교수, ‘WCC 따라가면 교회 다 죽는다.’ 요약

이 연장선상에서 열린 부산총회에서는 ‘공의 사랑 평화 나눔 헌신 위로 격려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데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성명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이들은 인간의 소원을 부추기고 그것을 사회 속, 세상 어떤 기구나 관념 속에 이루어내고자 하는 가시적 종교적 일치에만 관심을 가질 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인류의 구주라는 신앙고백적 일치는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그들 주장이나 이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나 약속, 명령이 들어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서 이루신 영혼구원과 영생, 성령께서 각 사람 심령에 들어오셔서 인도하시는 일, 곧 복음이 설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 WCC가 세계교회의 지지를 받고, 세계 교회가 WCC의 신학을 지지한다면 세계교회는 유일하신 하나님, 곧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고, 인간의 경험과 철학 속에서 발생했음으로 인간이 주인이 되어 인간의 문화적 육체적 편안을 추구하는 하나의 종교단체라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종교에는 의식과 고행은 있어도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는 사랑의 사령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가 흘리신 보혈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생명이 되고, 그가 찢으신 그 몸만이 우리 영혼을 영원히 살리는 영생이 된다는 소식이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소외계층이나 어떤 소수인의 것이 아니라 죄인, 곧 율법에 정죄 받고 마귀의 참소 하에 있는 전 인류가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동의한다면 기독언론의 자리는 매우 명확해진다. 오늘 우리의 증거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과 경륜을 담고 있고, 성경이 소개하는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으로 그의 공로와 은혜를 믿어야만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간다 함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성령이 임하실 성전이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보혜사시다. 이들이 연합을 이룬 공동체가 교회연합이요,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리스도의 몸을 기능하고 그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물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평화 나눔 헌신 위로 격려 등의 도리를 행할 뿐 아니라 널리 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세상의 모든 종교인과 토속, 민간 신앙인도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받고 영생을 얻기까지 우리들 달려갈 길을 쉬지 않아야 한다. 천하 만민과 모든 족속에게 침례를 베풀고 예수명령을 가르쳐 제자 삼는 일을 기독언론은 감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무리에게 있기를 기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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