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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WCC 부산 총회에 말한다
박덕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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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5  1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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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협의회가 땅 끝과 모든 족속과 천하 만민을 한 자리에 초청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성령의 교통감동의 축제를 이루는 것은 참으로 경축할 일이다. 여기에는 동서나 고금, 남녀나 빈부귀천, 신자나 불신자를 따로 할 수 없으니, 동성애에 빠진 사람도 와야하고, 우상 앞에 굴복한 사람이라도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고, 그 누구라도 함께 초대받고 와서, 예수교회가 증거 하는 그 진리와 생명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질병에서 치료를 받고 그리고 영원한 새 가치를 체험하는 축제의 현장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혹 어둠 속에 살았던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그 헛된 삶을 회개하고 영원한 행복과 진정한 생명을 소유하는 기회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절호의 찬스를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총회가 추구하는 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진리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한다기보다는 동네사람 모아놓고 반상회를 하듯, 우리들 물질문화적 삶의 진보를 위하여 다수의 의견들을 내놓고 토론하여, 이전의 총회에서 동성애나 낙태 등을 인정한 것과 같이 다수결로 채택한 그것을 일치와 평등, 사랑과 평화라는 말로 왜곡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모임이라면 그것을 굳이 예수교회협의회라 불러서 예수이름을 훼손해서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교회는 교회의 일탈로 인해서 그 본질이 오도되고 그 머리이신 예수가 심각하게 오해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절대적 생명과 행복을 위해서 허락해 주신 최대최선의 법규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그 계명과 약속을 지키고 순종하는 일에 단합하고 일치를 이루는 것만이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은 총회 주관자들이나 참석자들이 예수와 신약교회에 대한 정당한 이해가 부족한 경향을 보임으로써, 사단이 토해내는 각색의 사상, 이론에 깊이 물든 세계 속에, 우리 하나님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역사를 증거 하려 하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상황적 이해관계가 앞서고, 인본적 조화를 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지상천국을 이룰 것인가? 사회구원을 실현할 터인가?

첫날의 개회예배 소식을 들었다. 왜 십자가와 예수의 초상이 신약교회의 예배 단상에 올려 져야 하는가?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성령과 진리로 드려야만 하는 실상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일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셨고, 하늘보좌에 오르셨으니 우리는 그분을 우리들 심령에 모셨다. 십자가는 단지 그가 고난 받으신 형틀일 뿐이다. 또 각 사람의 심령에 오신 성령은, 예수가 세상에 더 있지 않으니 그를 보려고 하지 말라고 권고하신다(요16:10). 그러므로 예배는 그런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물질로 효과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이름과 그의 은혜공로와 그가 주신 계명만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뵈어야 하는 생명이 넘치는 현장이다. 예배에 십자가나 초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힘입은 심령에 흘러가는 보혈의 은혜와 예수이름의 권세, 성령의 증거와 자유가 넘쳐야만 하는 것이다.

예배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는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한국인의 정서를 세계인에게 알리려는 인본적 노력보다 회중 모두에게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뵙도록 안내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는 미신적 행위를 배제해야 하고, 또 구약의 성전제사에서 드렸던 가시적 의식으로 그들 거룩함을 나타내야 했던, 그 비유로 돌아가려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구약예전의 전체를 예수의 몸에 흡수하여 십자가에서 찢어 피를 흘리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진리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그 생명과 복을 누리게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그들은 재를 뿌려야 하는가? 구약 시대의 왕들은 깊은 회개의 자리에 나아갈 때 재를 뿌리고 베옷을 입었으니, 이들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신분상의 죄인이었다. 그들의 거룩함이나 성결함을 나타낼 때는 옷을 입거나 먹는 것을 제한하거나, 이렇게 재를 뿌림으로서 하나님 전정에 구별되었음을 고백한 것이었으나, 우리의 거룩함은 예수 보혈의 공로를 힘입고 또 진리로 구별되는 것이다. 남녀가 흰옷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춘 것 또한 신약교회의 자유보다는 시각적 효과를 예배에 도입한 이탈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고, 또 각 나라가 즐기는 십자가를 수집 전시하는 것도 미신적 양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들은 사랑을 매우 강조하고 그 사랑 받고 감동한다. 주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음을 실천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게 여긴다. 우리 중 누가 사랑이나 섬김, 위로나 선행을 나쁘다고 하는가. 그렇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신 사랑과 섬김은 박애주의이거나 사상이 아니라 자기 몸을 찢는 희생의 결과로 우리들 영혼을 대속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벗은 자를 입히는 인정이 있어야 할 테지만, 식사 대접 잘 받은 사람이 자기 속의 그 갈등 이기지 못해 좌절 절망에 허덕인다면 그것은 외면해도 좋은 것인가.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일회적이고 윤리적, 또는 물질적이고 육체적 사랑도 필요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흑암의 세력자, 사망의 권세에 눌려있는 영혼들에게 영광의 복음을 알려 주어서 그들 영혼이 구원받게 하는 것이 참 사랑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이것이 없어 싸우고 눈이 붉어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과학적이며 현대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영적 이야기를 두려워하며 피하려 한다. 이는 그들도 어렴풋이나마 그들 종교심으로써 이 진실을 알고 또한 그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곧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실상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 육체 속에 다른 영들이 침입해 있고, 또 본인의 의지가 박약한 경우에는 침입한 영의 의지가 드러나므로 본인은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정신적 문제로 나타나기도 하고 신체적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이혼, 파산, 자살, 파괴, 빗나간 성질 등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교회는 이러한 영적 현상들을 성경적으로 진단하고 해결해 주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니 이번의 총회도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 외에는 이러한 비밀한 세계를 아는 자가 없으니 ‘예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반석 위의 교회’인 것이다(마16:18).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산 정상에 부르셨고 백성은 산 밑에 진을 쳤다. 하나님은 창조 때의 일로부터 장차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들을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 산 밑에 있는 백성은 정욕의 잔치에 몰두했다(출32장).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그들은 타락했으니 우리는 이번 모임이 인간중심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광야에서 주린 자 수천 명이 주님 손에서 떡을 배불리 먹고 모두 떠났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다(요6:66-69). 제자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 대답했다. 오직 영생의 진리만을 선포하기를 바란다. 주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고 물으신다(마11:7-9). 오직 예수로 시작하고 예수가 결론되게 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주께서 초기교회에 경고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임을 되돌아봐야 하겠다(계2장, 3장).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가 꾸지람을 받았으니,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있어서 니골라 당, 곧 거짓 교리를 구별해 냈지만 처음 사랑을 상실했으니 이는 성령으로 이루어야 할 역사와 열매를 잃어버렸다는 말씀이다.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발람의 교훈을 따라 신비주의 교리에 빠져 있었다. 신비주의 교리는 성령의 역사와 귀신의 역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신비주의를 성령운동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했다. 마귀는 바벨론 신비주의를 통해 거짓 선지자를 교회에 파송한다. 성경을 무시하고 인본주의 교리를 구축함으로 세상 종교들의 잡다한 상징물들을 들여와 혼합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사데 교회는 껍데기만 존재하는 외식하는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교회, 물질이 풍족함으로 고갈되어 버린 자신의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구제는 했지만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했다.

이번 총회에 국내외 많은 회중과 지도자가 참석했다. 나름의 바람과 기대를 했을 터다. 그러나 그들 기대가 예수가 아니고, 구원이 아니고, 영생이 아니었다면 한국교회는 정당하게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 심령에 예수를 넣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교리나 상황에 매달리지 않게 하고 말씀 신앙을 가지게 하자.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말씀의 현재적 역사를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드렸던 겸손과 순종을 본받게 해야 한다. 주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지키는 제자, 그리고 동일한 제자 삼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해보자. 거칠고 타락한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영적전투를 위해 말씀과 성령과 능력으로 무장시켜 각각 승리의 행진을 하도록 유도하자. 그리하여 한국의 예수교회가 세계의 모교회로 역할하는 중대한 기회로 승화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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