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부 이사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초 어느 날 한 방송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농협 문제를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8개항의 질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는 각 문항에 대해 무슨 말이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했다. 카메라가 켜지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농민에게 계속 비판받는 농협

첫 질문은 “우리나라 농협은 왜 계속 농민들에게 비판을 받아왔다고 보는가?”였다. 난 이렇게 답했다. 농민 조합원이 바라는 일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협동조합이고 농협의 주인은 농민 조합원이다. 그런데 농민이 바라는 소득증대를 위한 농산물 생산과 유통·가공·판 매 사업은 시늉만 내고 조합경영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을 상대로 돈 장사와 돈 되는 장사에만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농협은 사실상 은행이나 다름없다. 수익을 많이 내야 임직원은 자신들의 고액연봉과 후생복지를 챙길 수 있고, 조합장은 정치인이나 관리들과 유착 권력도 행사하고 각종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기회가 되면 지방정치에도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임직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농민조합원을 앞세워 놓고 적당히 이용만 하고 있다.

다음 질문은 “농협이 원래 취지에 맞게 변화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였다. 이에 조합원이 바라는 농산물 생산과 유통·가공·판 매사업을 잘하는 판매(마케팅)농협으로 가야한다. 그러려면 조합원이 농협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깨어나야 하고, 조합일이나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대의원, 이사, 감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조합을 살펴야 한다. 고용직 임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잘 하는지, 조합 돈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꼼꼼히 따지는 등 조합경영에 대한 지도·감 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려면 농민들이 협동조합의 경영, 인사, 재무, 회계 등을 잘 알아야 하고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유지나 조합 출신 상무보다는 농민조합원을 위해 일해 줄 일꾼을 조합장으로, 이사, 감사, 대의원으로 잘 보고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교육 더욱 강화해야

마지막으로는 “각 단위조합의 교육지원 사업이 미미한 것 같다. 이유와 대안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왔다. 협동조합은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은 원칙(정관, 규정이나 규약 등)에 따라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모든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나가는 자주, 자치조직이다. 따라서 조합 임직원은 물론 조합원 모두가 협동조합의 가치와 경영원칙 등을 잘 알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농협이 가장 잘못한 일은 조합원과 임직원에 대한 협동조합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고, 특히 대의원, 이사, 감사에 대한 직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은 것이다. 농민 조합원이 농협을 잘 알게 되면 조합장 노릇하기가 힘들어지고 고용직 임직원들이 일할 수 없다며 조합원에 대한 우민정책을 써왔기 때문이다. 조합원 교육을 농협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마침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협동조합에 대해 교육지원 등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정부와 시·도, 시·군이 나서고 농민단체가 중심이 돼 농민에 대한 협동조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예정된 8개항의 질문이 모두 끝났는데도 질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됐고 녹화는 거의 1시간 반을 넘겨서야 끝이 났다. 카메라를 끄고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는 농협이 (농민 조합원이) 바라는 방향으로 바뀔 것 같으냐며 나의 솔직한 소감을 물었다. 이번 농협문제를 취재하면서 과연 바뀔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농협제자리찾기운동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옛날 우공이라는 90세 가까운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두 산에 가로막혀 늘 돌아다니기 불편해 자식들과 의논해 산을 옮기기로 하고 산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루는 친구가 찾아와 어리석은 일 그만하라고 하자 우공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 이 일을 하면 언젠가는 평평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옥황상제가 감동해 두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줬다는 중국고사를 설명했다. 되지도 않을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지라고 확신을 가지고 매진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농협 개혁’ 농민 조합원이 나설 때

농협은 농민에게 ‘불편한 산’이 된지 오래됐다. 50년 넘게 계속되는 불편에 농민들은 지쳐가고 있고 불만은 산처럼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바뀔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농협을 바꾸는 일은 말로 되는 일도,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농민 조합원들이 깨어 일어나 불편한 산을 파 옮기듯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이다. 90세가 다되어 산을 옮기겠다고 나선 우공을 생각하면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농민들도 지금부터 시작해도 앞으로 20~30년씩은 충분히 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농협을 바꾸겠다는 뜻을 세운 우공들이 농협이 있는 곳마다 들고 일어나 힘을 합친다면 농협인들 못 바꾸겠는가.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의 힘이다. 이제는 조합원 농민이 나서야 할 때다.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
2013년8월26일자 (제2556호)